제목 케냐의 젊은 무에타이 선수들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강행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하는 꿈을 꿉니다.

케냐의 젊은 무에타이 선수들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강행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하는 꿈을 꿉니다. 라엘 옴부오르(Rael Ombuor)
나이로비- 라엘 아슈브웨 (Rael Ashubwe)가 18세가 되던 2년 전에 아슈브웨의 아버지는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로 향하는 버스에 그녀를 태웠습니다. 당시 아슈브웨는 그때까지 대도시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슈브웨는 케냐 서부의 시골에서 태어났고 나이로비의 모습은 고작 신문과 잡지 사진으로만 봤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녀는 대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케냐 군대에 입대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사실 아슈브웨의 가족은 너무 가난했고 어머니는 세 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이로비에 도착해서는 카욜 (Kayole)에 살게 됐습니다. 카욜 (Kayole)은 범죄율, 마약 사용, 실업률이 높고 십대 임신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동네입니다. 아슈브웨는 자유 시간에 동네를 돌아다니다 스포츠를 훈련하는 팀을 발견하게 됐는데 당시에는 권투를 훈련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아슈브웨는 어렸을 때부터 격투 스포츠를 좋아했고 미국 레슬링을 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그 해 2021년 그녀는 52세의 길버트 미루카 (Gilbert Miruka) 코치에게 휴일 및 주말 훈련 세션에 참여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때 아슈브웨는 그 스포츠가 무에타이 또는 태국 복싱이라고 하는 태국에서 유래된 무술이자 격투 스포츠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렇게 아슈브웨는 나이로비 카욜 (Kayole) 2 소셜 홀에서 이른 아침 훈련에 참여하게 됐고 여기서 길버트 미루카 (Gilbert Miruka) 코치와 같이 자원봉사로 활동하는 코치에게 훈련 받는 다른 파이터들도 만나게 됐습니다. 그녀는 다양한 클린칭 기술과 함께 스탠드업 스트라이킹을 배웠고 스포츠를 훈련하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신체적 및 정신적 규율도 익히게 됐습니다. “처음 훈련을 시작했을 때 같이 사는 제 보호자가 제가 이런 훈련을 하고 깡패가 될까봐 훈련을 그만두라고 해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라고 아슈브웨는 회상합니다. “케냐에서 무에타이 또는 종합무예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이 운동 덕분에 저는 나쁜 친구, 도둑질, 임신과 같은 안 좋은 일들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좋은 스포츠입니다.” 아슈브웨는 그후 케냐에서 수십 개의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케냐 군에 입대하는 꿈 외에도 프로 무에타이 선수가 돼서 국제 경기에서 경쟁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케냐를 대표해서 여러 다른 나라 경기에서 메달을 따오는 것이 꿈입니다.”
52세의 길버트 미루카 (Gilbert Miruka) 코치는 케냐에서 거의 20년 동안 무에타이와 종합 무예를 훈련해왔습니다. 그가 훈련하는 카욜은 그가 젊은 시절 자란 곳이자 현재는 가족과 살고 있는 동네이기도 합니다. 미루카는 한때 마약 중독자였지만 젊은 시절 스포츠를 시작하면서 인생이 바뀌었고 목적 의식을 찾았으며 나이가 들면서는 주변의 젊은 남녀를 훈련시키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방학 동안 부모들은 5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을 훈련을 위해 미루카 코치 혹은 다른 자원봉사 코치에게 보내기도 합니다. 이런 아이들은 모두 빈곤한 동네 아이들로 밥도 먹지 않고 훈련하러 온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도 먹을 것이 없는 아이들도 있습니다”라고 미루카는 설명합니다. “삶이 녹록하진 않지만 아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훈련하는지 이 중에서 국제 경기에 출전해서 타이틀을 따오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라고 미루카는 덧붙입니다. 미루카 코치는 주로 후원자들에게 의지해 선수들을 다양한 경기에 출전시키려 하지만, 후원을 제대로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미루카 코치는 급여도 받지 않습니다. 2년 전에 팀원들은 태국 대회에 초청받았었습니다. 당시 후원자가 숙박비 등의 경비를 지원해주겠다고 나섰지만 항공권은 감당하지 못해 결국 출전은 하지 못했었습니다. 미루카 팀은 장갑도 해졌고 신발도 없이 훈련해서 팀원들이 부상을 당하기 쉬운 상황입니다. “이러한 스포츠를 관리하는 국제 기관에서 여기 이곳에 이렇게 재능이 넘치는 아이들이 많이 있고, 저희가 파트너십이나 지원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안에 최고의 무에타이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지원만 있으면 정말 성공할 수 있는 인재들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다 2018년에 식비와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1년 동안 휴학했고, 후에 다시 복학했을 때 1년의 휴학 기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에서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휴학 기간 동안 스트레스를 받아서 다른 선수들을 만날 수 있는 카욜2 소셜 홀에서 훈련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훈련에 합류했을 때 코치들도 훈련장 안에서는 마약 금지라고 말해줬고 당시 같이 훈련하는 친구들로부터의 압박도 있었습니다. 매일 훈련장에 온 덕분에 저는 범죄와 약물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타키아는 회상합니다. 타키아는 장래 희망이 의사이고 무에타이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국제 대회에 출전해서 학비를 마련하고 싶습니다.”라고 타키아는 포부를 드러냈습니다. 주니어 페더급 타이틀 외에도 타키아는 케냐 내 다른 국내 대회에서도 수십 번 우승한 경력이 있습니다. 토요일 아침 미루카 코치는 카욜 소셜 홀에서 수십 명의 젊은이들을 훈련시킵니다. 일부는 물병을 들고 와 결의에 찬 표정을 지어보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워밍업 세션에 참여했고 부모들이 주의 깊게 지켜보는 세션 중간중간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젊은 남녀 여럿도 세션에 참여했습니다. “이곳이 저희 커뮤니티이고 우리는 함께할 때 더 강해집니다. 스포츠 덕분에 우리는 가족이 됐고 더 좋은 사람이 돼가고 있습니다. 우리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고 세상에 영감을 주게 되기를 희망합니다”라고 길버트 미루카 코치는 설명합니다. ※ 본 글은 저자 개인의 견해입니다. |
- 이전
- 청(소)년을 위한 무예 윤리 교육 -
- 다음
- [현장 리포트]2024 가족 무예캠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