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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Martial Arts Globe] 무도인에 걸맞는 성격은 아닐지라도

  • 조회수
    158
  • 작성일
    2023-11-28
  • 첨부


무도인에 걸맞는 성격은 아닐지라도


<작가소개> 

이소

쓰고 그리고 수련하는 사람. 인터뷰, 카드뉴스 등 온라인 기반의 텍스트와 이미지 콘텐츠 제작을 업으로 삼는 프리랜서. 개인 생활에서는 검도 수련을 하는 생활체육인. 수련 일상을 소재로 글과 그림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도장에서 새 사람을 맞는 문지기 역할을 하지만 사실 낯을 좀 가립니다(Instagram: @life_kendo)

검도수련을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계속 만나는 친구도 있지만 헤어진 이들도 많아요. 검도를 배우기가 어려워서, 죽도를 쥔 손에 물집이 잡혀서,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기대보다 지루해서, 다니던 회사를 옮겼더니 도장과의 거리가 멀어져서.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기억하는 헤어짐의 이유도 꽤 쌓였습니다. “세상에는 계속 할 이유보다 그만둘 이유가 훨씬 많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쓸쓸하지요. 일이 하기 싫어서, 상사랑 사이가 안 좋아서 등등. 저만 해도 뭔가를 계속하기 보다 그만하고 싶은 이유를 줄줄 달고 사는 사람이라 그런가 봅니다.


누군가를 때리기가 무서워요.”


사람들이 검도를 그만둔다 말한 이유 중 기억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맞는 게 아니라 때리기가 무섭다는 초보자 분의 의견이었어요. 검도의 타격부위는 정해져 있는데요. 머리, 손목, 허리, 목 중앙. 보호장비를 두른 부분을 때리니까 죽도로 맞아도 아프단 느낌은 안 들거든요. 그걸 초보자분에게 설명했는데도 그런 생각이 든다니 신기했어요. 무예란 사람 마음 어딘가에 있는 공격성을 꺼내면 되는 거 아닌가? 상식이라 여겼던 제 고정관념 중 하나를 깨뜨린 말이었습니다. 도장에서 처음 보호구를 착용하고 죽도를 휘두르는 초보자분들께 그런 말을 가끔 한 적도 있거든요.


죽도를 휘두를 때 눈앞의 제가 상사라고 생각해보세요. 전투력이 막 올라갈껄요.”


세상에는 맞는 게 두려운 사람들이 있듯 때리기가 무서운 사람도 있는 거였어요. 무예를 하면 누군가를 때리길 피할 수 없으니 성미에 영 안 맞았겠죠. 그 사람에게는 무예를 그만 두는 게 맞는 일이었을 거예요. 동시에 그 생각도 들었습니다. 10년 넘게 검도를 수련해온 나는 어떨까 하고요. 무도인으로서 적합한 성격인가. 그 질문에 아니오' 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날 때부터 기세등등을 선택할 수 있다면

 

아자자자!”

이야아아아압!”

 

주말에 열리는 아마추어 검도대회. 여기로 여러 지역의 검도인들이 찾아옵니다. 이기고 지는 찰나. 치열한 승부의 순간을 거듭하며 우렁찬 기합소리를 내지르죠. 온힘을 다해 상대의 빈틈을 공격하는 그들의 모습에 기세와 위풍당당함이 녹아 있달까요. 반면 저의 기합소리는 종종 입밖으로 튀어나가지 못한채 목구멍 안으로 숨어버립니다.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마음도 잘 먹어지지 않아요. 무섭다, 숨고싶다. 이런 순간들을 숱하게 넘어서며 수련을 해왔는데도요.


물론 어떤 때는 용기가 불끈 솟기도 하는데요. 어떤 약함은 변하지 않는가봅니다. 특히 최근에 나갔던 검도대회의 3인조 단체전에서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어요. 초반에 먼저 점수를 내놓고 역전패를 당했거든요. 너무 긴장하고 얼어서 스스로 점수를 냈는지도 기억을 못 하고, 엉거주춤 하다가 상대에게 빵빵 맞고 힘 없이 나왔습니다. “잘 못해서 미안해..” “언니 괜찮아요!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는걸요.” 주말의 귀한 시간을 내서 함께 뛰어준 사람들에게 무척 미안해졌어요. 위로의 말이 고맙게 다가오다가도, 번번히 두려움 앞에서 미끄러지는 자신이 아쉬워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용기를 낼 수 있을텐데.


수련을 계속 하다보면 더이상 무서워하지 않는 나'를 만날 줄 알았거든요. 그렇진 않더라고요. ‘계속 무서워하는 나'를 만나야 했어요. “담이 약해.” 저를 가르쳐주시는 사범님이 종종 하시는 말인데 스스로도 제 마음의 약함이 종종 느껴지지요. 기세 좋게 덤비는 사람들을 흉내내고 싶어도 안 맞는 옷을 입은 마냥 움직임이 더 어색해진 적도 있고요. 게다가 저보다 수련시간이 짧아도 저보다 기세 좋고 당당한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그들을 보면 어떤 강함은 타고나는건가 싶죠. 제 마음 같은 어떤 약함이 타고나듯이요. 태어날 때 기세 등등한 사람'으로 선택해 태어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되는 버튼을 꾹 눌렀을텐데. 두려운 마음에 숨이 턱 막힐 때, 그 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다고 느껴질 때. “무예수련은 내게 안 맞는 일이야.” 그 생각이 퍼뜩 떠오릅니다



마음이 따라가지 않더라도 몸이 해낼 수 있게

 

그 생각 앞에서 간신히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 귀찮음과 두려움에도 꾸준히 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일. 쉽사리 즐겁지도 유쾌해지지도 않는 행동을 어쩐지 십수년째 계속 하고 있습니다.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무섭지만 뭐라도 하는 사람'. 둘 중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에요. 다행인 건 어쩌다 노력한 것들이 몸에서 불쑥 튀어나와 생각지 못한 결과를 불러낸다는 거예요. 2년 반 동안 탈락했던 5단 승단심사에 합격한 일, 시 단위 검도대회에서 개인전 입상을 한 경험. 상대에게 맞을까봐 쉽사리 공격 못하던 시합에서 뛰어들어가 치는 머리치기 기술로 1승을 거두는 때. 물론 그런 순간들은 가끔 등장하고, 다시 겁 많은 나의 시간이 펼쳐집니다만. 여기에 제 곁에서 좋은 말을 해주시는 사범님들이 계세요.

 

마음이 약하더라도 계속 연습을 해봐. 1년에 머리치기 공격이 한번 성공해도 괜찮아.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하루에 머리치기를 10번 성공하는 날이 있을거고. 그렇게 시간을 들여 마음이 몸을 단련시키면 어느날은 마음이 안 따라가도 몸이 알아서 해내는 순간이 생기겠지.”

 

따로 기록하는 수련일지에 이날 들은 말을 적어두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조금씩 노력을 더하는 나날도 괜찮지 않나. 그런 말들에 기대어 하루씩 수련을 이어가봐도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약해졌다가 강해지길 반복해요. 아직 몸이 원하는 만큼의 용기를 발휘하는 날은 안 왔지만, 아직 오지 않은 날 중에 내가 강한 날도 있지 않을까. 그 순간을 느끼면 꽤 멋질 것 같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강한 사람이 보여주는 기세도 있지만, 약한 사람이 오랜 시간동안 담금질 끝에 길어올리는 강함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요즘 운동량을 늘리기 위해 도장에 갈 때 버스를 안 타고 걸어서 움직입니다. 걷다보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생각이 정리되요. 오늘 수련하러 가서는 뭘 해야지, 하면서 목표설정도 떠올릴 수 있어 좋아요. 무예가 본업인 사람들처럼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거죠. 귀에 이어폰을 꼿고 신나는 아이돌 노래를 듣는 날에는 뭐든 해낼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이렇게 마음을 잔뜩 부풀려 가보지만 도장에서 몸을 부딪혀가며 대련할 때는 다시 약한 인간이 되버리지만요.

 

제 약한 성격에 대해 털어놓는 건 여기까지. 그만 일과업무를 정리하고 도장으로 걸어가봐야겠습니다. 오늘은 좀더 굳건한 마음으로 덤빌 수 있을까요. 조금은 응원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무서워도뭐든 해보러 가보겠습니다. 저처럼 마음 약한 사람도, 강한 투쟁심으로 시합장을 평정하는 무예인들에게도. 즐거운 수련생활이 계속 되기를.


※ 본 글은 저자 개인의 견해입니다